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지난 1월 5일(한국시간) 태국 방콕의 라차망칼라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태국과의 2024 아세안 미쓰비시일렉트릭컵(미쓰비시컵, 동남아시아 축구선수권 대회) 결승 2차전에서 3-2로 승리하며 대회 정상에 올랐습니다.
미쓰비시컵은 동남아 10개국이 참여하는 대회로 '동남아의 월드컵'으로도 불린다. 지난 2008년과 2018년 미쓰비시컵에서 정상에 올랐던 베트남은 6년만에 통산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인 지도자로는 2018년 박항서 감독에 이어 김상식 감독이 역대 2번째다.
특히 김상식 감독에게는 모국인 K리그에서의 좌절을 극복하고 해외무대에서 지도자 인생의 성공적 재기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남다르다. 김 감독은 한국축구와 K리그를 대표하는 레전드 출신이다. 현역 시절 당대의 정상급 수비형 미드필더로 성남 일화(현 성남FC)와 전북 현대에서 선수생활을 보내며 무려 5회의 K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국가대표로도 10여 년 넘게 활약하며 A매치 59경기에 출전했고 2006 독일월드컵-2007 아시안컵 무대 등을 밟았답니다.
지도자로서는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김상식 감독은 친정팀 전북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코치와 감독을 거치며 우승을 경험해본 유일한 인물이었다. 최강희 전 감독-이동국(은퇴)과 더불어 명실상부 전북을 상징하는 레전드 중 한명으로 꼽혔다. 오직 감독으로서만 봐도 2021년 K리그 우승, 2002년 FA컵 우승을 각각 차지하며 나름의 성과를 남겼다.
하지만 전북에서의 말년은 김 감독과 전북 팬들 서로에게 모두 상처로 남았다. 김 감독은 부임 3년 차였던 2023시즌 초반, 우승후보로 꼽히던 팀이 강등권까지 추락하면서 극심한 비난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자진사퇴했습니다.
성적뿐만 아니라 이미 부임 초기부터 무리한 세대교체의 실패, 경직되고 색깔없는 전술운용, 미숙한 인터뷰 스킬로 인한 잦은 설화 등으로 김 감독은 재임 기간 내내 끊임없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전북 팬덤과의 불화는, 홈경기에서 팬들이 응원을 거부하고 김상식 감독의 퇴진을 요구하며 대놓고 야유와 욕설을 날릴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하지만 재기의 기회는 전혀 의외의 자리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지난 2024년 5월 3일 베트남축구협회(VFF)는 "한국 출신의 김상식 감독을 베트남 A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총괄하는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계약기간은 2026년 3월까지 약 2년간이었다. 한국인 감독이 베트남 사령탑을 맡은 것은 박항서 전 감독에 이어 두 번째였습니다.
베트남은 오랫동안 아시아 축구의 변방에 불과했으나, 2017년 박항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전혀 다른 팀으로 바뀌었다. 박 감독은 2023년까지 무려 5년 4개월간을 장기 집권하면서 2018 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 2018년 미쓰비시컵(당시에는 스즈키컵) 우승, 2019년 UAE 아시안컵 8강, 2022년 FIFA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베트남 축구 최초의 최종 예선 진출과 첫 승(중국전) 등의 성과를 남기며 베트남 축구의 역사를 연달아 새롭게 써내려간 '국민영웅'으로 등극한 바 있다.
베트남은 2023년 박항서 감독과 계약이 만료되며 아름답게 결별한 이후 프랑스 출신의 필립 트루시에 감독을 새롭게 선임했다. 하지만 트루시에 체제에서 베트남은 월드컵 2차 예선과 아시안컵 조별리그에서 연패를 거듭했고, FIFA 랭킹은 다시 100위권 밖으로 추락했다. 트루시에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마지막 10번의 A매치에서 고작 1승 9패에 그치자 베트남은 결국 감독 교체를 선택했다. 박항서 전 감독에 대한 향수가 아직 강하게 남아있던 베트남의 대안은 다시 한번 한국인 지도자였습니다.
베트남에서 김상식 감독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전망은 엇갈렸다. 해외팀과 국가대표팀 지도 경력은 모두 베트남이 처음이었다. K리그 최고 수준의 클럽인 전북에서 전폭적인 지원까지 등에 업고도 실패를 맛본 김 감독이, 아시아축구에서도 '언더독'이자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베트남에서 과연 통할 수 있을지 부정적인 전망도 적지 않았다.
김상식호는 6월 6일 하노이에서 열린 A매치 데뷔전인 월드컵 2차 예선 5차전 필리핀전에서 3-2로 승리하며, 첫 경기부터 베트남의 연패 행진을 끊는 데 성공했다. 비록 월드컵 3차예선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예선 탈락은 이미 전임 트루시에 체제 때 부진의 여파였기 때문에 이를 두고 베트남 현지에서 김상식 감독을 탓하는 반응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친선전에서 러시아-태국에 연패하고 약체 인도와 비기는 등 부진이 이어지자, 김상식 감독의 지도력을 바라보는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다. 현지에서는 중간고사 무대라고 할 수 있는 미쓰비시컵에서도 부진할 경우, 김상식 감독 역시 조기경질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다행히 김상식 감독은 미쓰비시컵에서 반전 드라마를 쓰는데 성공했다. 박항서 감독 시절부터 이어져 온 한국식 압박과 역습 축구를 베트남에 녹여내며 승리 본능을 되살렸다. 또한 이번 미쓰비시컵부터 베트남 역사상 최초의 귀화선수로 새롭게 합류한 브라질 출신 응우옌 쉬안 손(베트남 남딘FC)의 맹활약은, 베트남 축구의 고질병이던 골결정력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힘이 됐다.
김상식호는 조별리그에서 3승 1무로 B조 1위를 차지하며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4강에서는 싱가포르를 만나 1차전 원정 2-0 승리, 4강 2차전 홈에서는 3-1로 승리하며 합산 스코어 5-1로 제압하며 결승무대에 올랐다. 결승에서는 전통의 라이벌 태국을 상대로 1차전 홈에서 2-1, 2차전 원정에서도 3-2로 짜릿한 연승을 거두며 총 8경기에서 7승 1무를 기록하며 '무패 우승'을 완성해냈답니다.
태국은 김상식호의 벽에 막혀 미쓰비시컵 3연패와 통산 8번째 우승이 좌절됐다. 김상식 감독은 태국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일본 출신 이시이 마사타다 감독과의 '동남아 감독 한일전'에서도 승리하며 그 의미를 더했다.
김상식 감독으로서는 베트남 지휘봉을 잡은지 불과 8개월만의 첫 우승이다. 무엇보다 이번 우승을 통하여 그동안 따라붙던 지도력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불식시키고, '제2의 박항서 신화'를 잇는 후계자로 그 입지를 확고하게 다질 수 있게 됐다.
국내 무대에서는 단점으로 지적받던 전술적 역량이나 인터뷰 스킬 등도 베트남에서는 호평이 더 우세하다. 김 감독은 결승전을 앞두고 "이번 대회 우승에 내 축구 인생 전체를 걸었다"며 우승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밝히는가 하면 "이제 더는 태국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베트남 팬들의 감성을 대변해주는 메세지로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박항서 전 감독과 신태용 현 인도네시아 감독에 이어, 김상식 감독까지 연이어 성공을 거두면서 동남아에서 한국인 지도자 신드롬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그동안 좁은 국내 무대에서만 경쟁해야 했던 유능한 한국인 지도자들에게도 동남아라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기면서 앞으로 더욱 활발한 해외진출도 기대해볼 만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