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비돌이의 세상만사

지난 2014년 보도에 따르면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멜라니 그리피스가 합의 이혼을 한답니다. 당시에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멜라니 그리피스가 로스엔젤레스 법원에 이혼 서류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던 것입니다.


이혼 사유는 성격차이랍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멜라니 그리피스가 법원에 '극복할 수 없는 큰 성격 차이'를 이유로 이혼을 청구했던 것이다"고 전했답니다.

이에 "우리는 정말로 서로를 사랑하며 함께 보냈던 아름다운 시간을 지키고 서로를 존중하는 방법으로 심사숙고한 뒤에, 20여 동안의 결혼 생활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답니다. 슬하에 나이가 18세의 딸 스텔라를 둔 이들 부부는 양육권과 재산분할 소송을 특별한 분쟁없이 차분하게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참고로,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멜라니 그리피스는 지난 1996년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이전에 안토니오 반델라스는 첫 번째 부인 애나 레자와 결혼식을 올린지, 10년만인 지난 1996년에 이혼했답니다. 멜라니 그리피스는 전 남편 돈 존슨과 사이에서 딸 다코타 존슨을 두고 있답니다.

한편, 반데라스는 말라가 출신으로서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호세(José)이며, 안토니오는 천주교 세례명이랍니다. 젊었을 때는 정말로 정열적이고 간지나는 미청년의 느낌이 강했고 지금은 나이가 들면서 미중년의 테크트리를 타고 있답니다.


그는 스페인에서 태어난 뒤에 자란 순수 유럽계 백인이지만 의외로 멕시코 등 라틴아메리카 출신 히스패닉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 편인데, 영화에서 남미쪽 사람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그런 듯 하답니다. 할리우드에는 지난 1990년대에 입성했으며, 이때부터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답니다.

하지만, 이미 지난 1980년대부터 스페인 국립연극단 최연소 단원으로 활동하고 이를 눈여겨 봤던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와는 장편 데뷔작부터 여러 편의 작품을 함께 하는 등 스페인에서는 이전부터 대단히 촉망받는 배우이자 신세대 인기스타로 자리잡고 있었답니다.


'맘보킹'이란 작품으로 할리우드에 데뷔한 이후 한동안 멋있는 마스크와 눈빛 연기로 많은 여자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고 조연으로 출연했던 1993년작 필라델피아에서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톰 행크스와의 연기를 하면서 부녀자들의 가슴이 녹아나기도 했답니다.

 

지난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영화팬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의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포스터 한장쯤은 가지고 있었답니다. 기본적인 연기력도 좋은 배우이지만, 위험한 액션 연기도 서슴치 않아서 액션 영화에 자주 출연했답니다. 이미 액션영화계에서는 정말로 살아있는 전설 중 한 명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정받는 수준이랍니다.

특히나도 자신의 캐릭터와 맞는 배역을 맡았을 때는 포텐셜이 대폭발 하는 편인데 조로 영화 2편을 촬영한 뒤에 본인이 스페인 사람이니만큼 주인공 조로 연기가 매우 잘 어울린다는 대호평을 받았답니다.



야구선수 김현수는 두산 베어스와 아울러서 볼티모어 오리올스,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거친 뒤에 지난 2018년부터 LG 트윈스에서 뛰고 있는 우투좌타 외야수, 1루수 겸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부회장이랍니다. 2021년 연봉은 10억원이죠. 

장효조와 더불어서, 양준혁 - 장성호의 뒤를 잇는 대표적인 좌타 교타자랍니다. 그리고 국가대표 붙박이 3번 타자이기도 하답니다. 1988년생으로서, 당시 에 21세라는 젊은 나이에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았으며, 국내 타자 중에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로 진출할 가능성이 정말로 높다고 일찍이 평가받은 타자였으며, 전 소속팀인 두산 베어스의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선수랍니다.

 

그는 주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던 초창기 3년 간은 우투좌타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장타율과 아울러서, 괴물과 같은 선구안, 좌타임에도 불구하고 낮지 않은 좌완 상대 타율 등 타자로서 정말로 아무런 약점이 없는 선수였답니다.

역대 한국 최고의 교타자인 장효조, 양준혁도 김현수 나이 때는 그 정도 활약을 하지 못했답니다. 2년 연속 .350 이상의 타율은 정말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랍니다.

지난 2008년과 아울러서, 2009시즌의 폭발적인 퍼포먼스에 비해 정체되었던 시기가 있었던게 아쉬운 것이지만 그래도 2015년까지 계속 3할 이상의 타율은 보장하는 리그 정상급 좌타 교타자 중 한 명이었답니다. 한국에서 가장 넓은 잠실야구장에서 2020년까지 합쳐 20홈런 5시즌을 기록했던 것이며, 컨택이 하락했다고 여겨진 지난 2011시즌 이후로도 두자릿수 홈런은 무리없이 칠 정도의 장타력도 보유하였답니다.


참고로, 매년 시즌 시작할 때마다 장타자로 변신하겠다고 다짐하는 인터뷰를 하고 있으며, 실제로 슬러거에 가까운 스윙을 때때로 보여주고는 있지만 국내에서 가장 넓은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는 상황에서, 공을 끝까지 보고 치는 교타자에 가까운 원래 성향 탓인지라 장타자로의 변신이 오히려 타격 밸런스를 망치는 원인이 아니냐는 의견이 다수였답니다.



할리우드 배우 캐서린 제타 존스(1969년생)와 나이가 25세 연상인 남편 마이클 더글라스와 여전한 금슬을 자랑했답니다. 


캐서린 제타 존스는 2021년 6월 8일 자신의 SNS에 글과 함께 남편과 함께한 사진을 공개했답니다. 해당 사진 속 두 사람은 해변에서 입맞춤을 하고 환히 웃는 등 다정한 포즈를 취하고 있답니다. 영화계 대표적인 스타인 캐서린 제타 존스의 변치 않은 미모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참고로, 영화 '마스크 오브 조로' 등으로 유명한 캐서린 제타존스는 할리우드 톱 배우 마이클 더글라스와 지난 2000년 경에, 무려 25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했답니다. 슬하에 아들과 딸을 뒀답니다. 그녀는 영국 국적의 배우로 웨일즈가 고향 출생지랍니다.


그녀는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할리우드를 휘어잡는 배우였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커리어를 탄탄히 쌓았으며, 나이가 꽤나 많이 드신 지금도 예전처럼 폭발적인 인기는 끌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배우입니다.

한편, 아버지가 과자 공장 사장이어서 유복하게 자랐던 것이며, 어릴 때부터 뮤지컬 전문 배우를 목표로 춤과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웠답니다. 지난 1981년 뮤지컬 《애니》에 출연하면서부터 이른 나이에 배우 인생이 시작되었답니다. 이후에는 영국 방송에 진출했으며, 할리우드 관계자들의 눈에 들면서 1998년 《마스크 오브 조로》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답니다. 해당 작품으로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답니다.

 

제타존스도 역시나 자신이 배우로서의 한계를 분명히 깨닫고 있었기에, 이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점차 자신의 배우로서 작품의 영역을 넓혀 나갔답니다. 르네 젤위거와 아울러서 리처드 기어와 함께 주연을 맡았던 영화 《시카고》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을 수상했답니다.

영화 시카고를 촬영할 당시 함께 출연한 르네 젤위거가 뮤지컬 경험이 풍부하고 기본기가 된 본인보다 조금은 돋보이지 못할까봐 머리를 짧게 단발로 잘라서 배려를 해준 일화가 있답니다. 영화상 젤위거도 단발이었지만, 머리카락의 움직임도 배우의 춤과 아울러서, 동작을 훨씬 돋보이게 해준다는 것을 고려하면 영화 전체의 균형과 상대배우와의 조화까지 생각한 정말로 세심한 배려인 셈입니다.

참고로, 대형 블록버스터나 한국에서 성공한 영화에 잘 주연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난 2004년 이후의 출연작들을 보면 대부분의 영화가 상업적으로 대박은 아닐지라도 중박 이상을 거두며 꾸준히 잘 나가고 있답니다.



검찰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자녀인 조민씨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시절 받은 성적과 관련된 문자 메시지 등을 공개하면서 “조민씨가 받았던 장학금은 특혜”라고 2021년 7월 9일 주장했답니다.


한편,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 21-1부 심리로 벌어진 조 전 장관 등의 재판에서 검찰은 2016년 6월쯤 조 전 장관이 딸과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를 공개했답니다. 이에 따르면 조 전 장관이 자신의 딸에게 “시험 정말로 많이 망했니”라고 묻자 조씨는 “항상 망했던 것 같다”고 답했답니다.

조씨의 지도교수였던 노환중 부산의료원장과 다른 교수 사이의 문자에서 노 원장이 “조씨가 시험을 정말로 얼마나 못 봤느냐”라고 묻자 해당 교수가 조민씨로부터 ‘어떤 두 과목은 거의 꼴찌였던 것이다'고 받은 문자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기도 했답니다.


이후에 조씨는 두 차례 유급에도 2016년 1학기~2018년 2학기까지 여섯 차례 연속으로 노 원장으로부터 장학금을 받았답니다. 검찰은 이 중 조 전 장관이 민정수석에 취임한 후인 지난 2017년 이후 세 학기 동안 받은 장학금 600만원을 뇌물로 기소했습니다. 노 원장이 자신의 인사나 병원 운영 등에 민정수석의 도움을 기대하고 줬다는 것이랍니다.

검찰은 아울러 조씨가 장학금을 받기 전인 2015년 12월 어머니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에게 보낸 문자도 공개했습니다. “경상남도 양산 생활도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선 교수님들도 챙겨 주고 부산대엔 특혜 많으니 아쉽지 않은 것이다”는 내용이었답니다. 조씨가 지난 2017년 가족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소천장학금을 제가 받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자, 정 교수 역시 “절대로 모르는 척해라”며 입단속을 시킨 내용도 공개됐답니다.

이에 검찰은 “(노환중 원장이) 유급한 조씨를 격려하려고 장학금을 줬다는 것은 구실일 뿐이다, 장학금은 보*성 특혜인 것이다”라고 주장했답니다. 그렇지만 조 전 장관은 재판 시작 전 입장문을 통해서 “자녀 딸의 장학금 수여에 전혀 관여한 바 없는 상황입니다”며 “이런 내용을 검찰도 조사 중 알게 됐음에도 ‘뇌물사범’ 낙인을 찍으려 기소를 감행했던 것입니다다”고 주장했답니다.

참고로, 노환중은 1960년생으로서 대한민국의 이비인후과(전공) 전문의랍니다.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학사와 아울러서, 석사, 박사 과정을 졸업 후 텍사스 대학교 암센터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재직했답니다. 지난 1994년부터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강사와 아울러서, 양산부산대학교병원의 기획실장, 진료처장, 원장을 역임한 뒤 2019년 6월 부산의료원 원장에 취임하였답니다.

그는 부산대 의전원 교수로 재직 중에 정치인 조국의 딸 조민의 지도교수였으며, 조민에게 비상식적 특혜를 제공했던 대가로 낙하산 인사의 수혜자가 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의 과거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직업)입니다. 지난 2003년 4월 24일 방송된 ITV 라이벌전 고수를 이겨라(대 기욤 패트리) 출신이랍니다.

정말로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쓸어담으며 본좌 라인에 포함되어 임이최마로 불리는 유명세를 떨쳤지만, 프로 경기에서 승부조작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임이 밝혀졌답니다.


참고로, 승부조작 사건 내에서도 중개자 위치에서 여러 인물을 포섭하는 등 사건의 스케일이 커지는 것에 일조한 인물이기도 하답니다. 현직 프로게이머 중에서 승부조작 사건의 주범이었던 셈입니다. 이에 따라서 KeSPA 주최 대회의 모든 전적이 삭제되었던 것이며, 지난 2010년 6월 7일 한국e스포츠협회 제 4차 상벌 위원회의 결정에 따라서 조작 사건에 가담한 다른 10명의 선수들과 함께 나란히 영구제명되었답니다.

그는 한참시절에 정말로 '본좌'였는데, 그를 상대하는 적들에게 '대재앙'이라는 등의 칭호가 붙었을 정도로 엄청난 실력을 선보였답니다. 하지만, 뒤에서는 팬을 물론이고,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을 배신했답니다 ㅠㅠ 당시에 기울어가고 있던 스타크래프트 판의 날개를 꺾어버린 인물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마재윤의 평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견이 있을 수 있던 것이지만, 스타크래프트 판에 가장 큰 실망감과 배신감을 안겨 준 인물이라는 데는 반론이나 이견이 없답니다. 여하튼간에 해당 사건이 터지면서 2010년 지상파 방송 3사 뉴스 그랜드슬램 2회 달성과 아울러서 스타판에서 퇴출 당했습니다.

과거에 양대 게임 방송사 주최 리그 전적과 수상 경력(개인 리그)은 각 방송사의 처분에 맡기기로 결정하게 되면서 소멸되지 않고 잔존했던 것이지만, 온게임넷에서는 용산 e-Sports 스타디움에 있는 스타리그 명예의 전당에서 마재윤의 사진을 없앴으며, MBC GAME에서도 마지막 대회인 ABC마트 MSL 결승전 엔딩에서 우승자 목록에도 박찬수와 같이 그의 이름을 넣지 않았답니다.

 

아울러, KeSPA에서 브루드워가 끝날 때 제정된 e스포츠 명예의 전당에서도 당연히 후보에서 제외되었답니다. 실질적으로 그의 개인 전적 기록은 승부조작으로 전부 말소되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답니다. 'OSL 1회 우승'과 더불어서, 'MSL 3회 우승', 'MSL 2회 준우승'을 포함한 개인 리그 기록도 함께 말소되었답니다.